본문 바로가기
일상생활

훈민정음 우리말의 창제 훈민정음의 구성

by jeonginblog 2023. 10. 13.
728x90

훈민정음 우리말은 조선시대 한글의 창제와 관련된 문헌으로, 한글의 발명자로 알려진 세종대왕(1397~1450)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문자 체계입니다. 훈민정음은 1446년에 창제되었으며, 조선시대의 국문서나 문서 작성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정인블로그

 

 

훈민정음의 특징

소리글자 : 우리말의 소리를 그대로 옮길 수 있는 문자입니다. 

과학적 : 음성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문자 입니다. 

간결 :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문자입니다.

 

훈민정음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없었던 당시에, 백성들이 글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던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한국의 문자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했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글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의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연구하고 개발했으며,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를 반포했습니다. 

 

훈민정음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창제되었습니다.

 

음성학적 연구 : 세종대왕은 우리말의 소리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음성학적 원리를 정립했습니다. 

문자 모양 개발 : 세종대왕은 음성학적 원리에 따라 문자 모양을 개발했습니다.

문자 이름 짓기 : 세종대왕은 문자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배경과 목적

당시 조선은 중국 문자인 한자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이를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훈민정음을 개발하였습니다. 

목적은 국문서 작성과 교육, 지식 전파 등을 위해 한글을 만들어 일반 백성들도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자 체계

훈민정음은 소리와 글자 간의 일치 원칙에 기반하여 만들어져 있습니다. 자모 요소를 이용하여 초성, 중성, 종성 등으로 구분된 음절을 나타냅니다. 자모요소를 이용하여 초성,중성,종성 등으로 구분된 음절을 나타냅니다. 초성(ㄱㅎ), 중성(ㅏㅣ),종성(없음 또는 ㄱ~ㅎ)등으로 구분되며, 이를 결합하여 음절을 형성합니다. 

 

 

글자 구성

한글 자모는 총 14개의 기본 자모와 이들로 조합하여 만든 복합 자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본자모는 초/중/종 모음과 받침 모양으로 구분됩니다. 예: ㄱㅏㄴㅇ 등 복합 자모는 기본 자모를 합쳐서 다양한 형태의 글자를 나타냅니다. 

 

초성 : 19개의 초성은 소리의 시작을 나타내는 자모입니다.

중성 : 10개의 중성은 소리의 중간을 나타내는 자모입니다. 

종성 : 10개의 종성은 소리의 끝을 나타내는 자모입니다.

훈민정음은 초성,중성,종성을 조합하여 우리말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습니다.

 

 

알파벳과 유사점

훈민정음은 알파벳과 유사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각의 자모 요소가 소리에 대응하여,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단어와 문장을 형성합니다.

 

 

활용과 영향력

훈민정음은 당시 국문서 및 문화 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예: 역사 서적, 과학 저작물, 시조 및 민요 등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까지 우리말 공식 문자 체계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한글을 사용합니다. 

 

문자발전 : 훈민정음의 창제는 한국의 문자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훈민정음 이전에는 한자를 사용해 우리말을 표기했는데, 훈민정음 창제로 인해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생겼습니다.

 

교육의 발전 : 훈민정음의 창제는 교육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훈민정음이 보급되면서 백성들이 글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교육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문화의 발전 : 훈민정음의 창제는 한국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로 인해 한국의 문화가 더욱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훈민정음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정인블로그

 

획수와 배치 변천

세종대왕 시기에 제작된 훈민정음에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의 개량과 변천이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초 중 종 성분 각각마다 독립된 위치에 배치되던 것에서 점차 정돈됩니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현대식"으로 변화하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유니코드 인식

현재 훈민정음 글자체는 유니코드 인식 범위 내에 포함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컴퓨터나 디지털 장치에서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지혜와 노력으로 탄생한 우리말 고유의 문자 체계로서, 우리 문화와 언어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한글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대왕 때 간행한 최초의 원본과 동일한 훈민정음의 판본입니다. 이에 '훈민정음 원본' 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다만 현재 남아있어 대한민국의 국보 겸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 간송본 역시 세종연간에 발행된 첫 판본으로 보기는 어렵기에, 역사학계에서는 '원본' 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훈민정음 해례본' 이라고 부릅니다.

 

해례란,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문자 창제 과정을 종합해 기록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세조때 간행된 아래의 언해본만 존재하였는데, 언해본에는 한글의 제자 원리를 기록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어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한글 자모는 한옥 창살을 보고 만든 것" 이라는 등 온갖 루머가 난무했습니다.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 자음은 인체의 발음기관을 본뜬 것이고, 한글 모음은 천지인 삼재를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배치해 만들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흔히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훈민정음 원본은 한문 서적입니다. 한글 창제 당시 한글은 문자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존재하던 한문으로 한글을 해설해야 했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

한문으로 기록된 해례본을 훈민정음을 이용해 옮긴 책, 현재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은 1459년(세조5년)에 발간된 <월인석보> 의 권두에 수록된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서문, 본분(예의) 부분이 수록되어 있고, 해례본에 있는 제자해는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현토)+언해'의 방식으로 쓰여 있는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랏말싸미...'도 언해본에 훈민정음으로 수록된 서문의 첫 구절입니다. 흔히 훈민정음의 모습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인석보 외의 언해본으로 2종(박승빈 본, 일본 궁내청 소장본)이 더 현전하지만 내용상의 차이는 없습니다. 

 

 

훈민정음 예의본 

해례와 예의가 모두 포함된 해례본과 달리 예의 부분만 들어 있는 것을 예의본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예의본은 단행본이 아니라, <세종실록> 과 <월인석보> 에 실린 한글번역본인 언해본이 있습니다. <예의본> 은 1940년에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이 처음 발견되기 이전에 훈민정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차적 문헌이었습니다. 

 

 

훈민정음 실록본

<훈민정음> 의 본문은 <세종실록> 에도 수록되었습니다. 해례본에는 실려 있는 '해례'를 제외한 '세종 서문', '본문(예의)','정인지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실록본이라고 따로 칭하기도 합니다.

 

 

 

 

 

 

728x90